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pdf 다운로드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현실’ 그 자체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법 스타일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김이설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소설, 향’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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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늘은 쓸 수 있을까.’ 그러나 나의 눈앞에는 ‘끔찍하게 지루한’ 일의 반복만이 놓여 있다. 나의 다짐은 아이들 물건이 널브러진 거실, 부엌에 쌓여 있는 설거지, 김치용 열무 세 단,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오줌 싼 이불로 수북한 하루치의 빨래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가족들의 행복과 안위를 위한, 의미 없는 희생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신이 식구들의 일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화가 치민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8년을 만나온 연인과도 이별한 참이었다. 나는 살면서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제야 어쩌면 자신과 잘 어울리는 상황에 놓인 것 같다며 자조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너무 쉽게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가슴 깊숙이 어딘가가 뻐근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 밤에 아픈 이가 또 있는 모양이었다. 가족이라서, 또는 가족이기에 더한 상처와 폭력을 휘두르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화자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시를 필사하는 것.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밤들이 더 많았지만 나만의 언어를 찾겠다는, 그러지 않으면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다는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화자는 필사 노트를 펼쳐 시집의 한 페이지를 한 글 한 글자 베껴 써 내려간다. 몇 번의 봄을, 몇 번의 여름과 가을과 몇 번의 겨울을 보낸 뒤 눅진하고 습한 밤의 시간들을 지나온, 마땅히 눈부실 너와 나의 계절들 네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터널은 결국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하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대는 재난문자 경보, 온 세상을 잡아먹은 것처럼 이어지는 미세먼지의 나날들. 그 속에서 여섯 식구가 창문도 열지 못한 채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집은 나로 하여금 마치 사방이 막힌 상자, 때로는 육중한 관 속에 갇힌 기분이 들게 한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두고 이른바 ‘K장녀(Korea+장녀)에 대한 서사’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 지망생인 ‘나’는 40대 비혼 여성이고 장녀로, 여동생의 이혼으로 곤궁에 처한 집안을 위해 조카들의 ‘돌봄노동’을 맡는다. 그리고 각종 집안일에 시달리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는다. ‘조용히, 쓸쓸히, 오롯이,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는 일상, 시를 필사하는 일조차 건너뛰는 날들. 그러나 가사노동의 무미함과 고단함보다도 나를 더욱 좌절케 하는 건, ‘나’의 노력과 수고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의미조차 없는 일, 능력이 없어 스스로 주저앉고 떠맡은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아무도 하기 싫은 일’로 치부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화자의 상황에 처한다면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래서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생의 끈질긴 얼룩과 여름 소나기에 대해서, 그 소나기 끝에 피어오르는 흰 구름에 대해서.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해서. 소설에서는 남의 시를 베껴 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좁아터진 목련빌라의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만의 시를 쓰기로 용기를 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정밀한 소묘화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하고 되뇌던 눅진하고 습한 밤의 시간들이 ‘오늘은 그래서 쓰고 싶었다’라고 발화하며 자신에게 몰입하는 충만한 하루로 이어지기까지, 이번의 정류장이 다음 승차의 어느 목적지를 향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한동안은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나는 잠시만이라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을 되찾은 것이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 7
목련빌라 17
필사의 밤 53
치우친 슬픔이 고개를 들면 95
여름 그림자 123
시인의 밤 153
우리의 문장을 싣고 달리자 -구병모 175
작가의 말 189